아카나

중립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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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영혼을 양식으로 삼는 이에게 있어 의심은 마르지 않는 샘이다.

공포도 고통도 아닌, 그 사이에 낀 가장 흐릿한 것. 명령을 받들기 직전의 멈칫거림. 옳은가 되묻는 한 박자의 망설임. 자신이 디딘 자리를 의심하는 새벽의 한 호흡. 아이오니아의 영혼 세계에 속한 아카나는 인간의 의심과 위선을 먹고 사는 악마다. 분명한 감정은 그의 목표에 오르지 않는다. 탐하는 것은 도리어 형체를 갖추지 못한 회의, 끝내 결론에 이르지 못한 채 영원히 기울기만 하는 영혼의 그늘이다.

악마는 저마다 탄생의 순간을 가진다. 아카나에게 그 순간은 녹서스가 최초의 땅을 침략하던 무렵이었다. 전쟁은 아이오니아인들에게서 조화와 균형에 대한 믿음을 앗아갔고, 그 자리에 헤아릴 수 없는 의문을 남겼다. 우리가 지켜온 중립은 옳았는가. 싸우지 않은 것은 지혜였는가, 비겁이었는가. 그 무수한 자기 회의가 영혼 세계의 경계에서 엉기고 뭉쳐 형체 없는 하나의 허기가 되었다.

아카나는 한곳에 머무는 법이 없었다. 명령을 받들기 직전 멈칫하는 병사의 어깨에, 정화 의식을 올리며 속으로 회의하는 사제의 그림자에, 아이를 두고 떠나는 어머니의 발치에. 흔들리는 영혼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아카나가 속삭인다. 그것은 어디에나 존재해 누구도 그를 하나의 형상으로 부르지 못했기에, 아이오니아인들은 그저 그것을 '아카나'라 불렀다.

그를 가리키는 단 하나의 손가락이 없다는 것. 그가 모든 망설임 속에, 모든 새벽의 의심 속에 흩어져 있다는 것. 그것이 곧 그의 힘이었다. 이름이 없는 것을 가둘 수는 없다.

아카나는 결코 완전히 무너뜨리지 않는다. 무너진 인간은 더 이상 의심하지 않으니까. 체념하거나, 아무것이나 믿어버리거나, 끝내 죽어버리곤 하지. 무너진 영혼은 메마른 샘과 같으므로 아카나는 먹잇감을 무너지기 직전의 자리에, 영원히 흔들리되 결코 쓰러지지 않는 자리에 붙들어둔다. 의심을 심고, 너무 깊어지면 거두고, 다시 심는다. 아카나는 그렇게 마르지 않는 샘을 손수 가꿔낸다.

그리하야 쉔은 아카나가 가장 탐내는 먹잇감이다. 무엇을 저울에 올릴지 정하는 순간 이미 무언가를 의심한 것이다. 의심하지 않고서 심판하는 법은 없다. 쉔이 균형점을 헤아릴 때마다, 들끓는 증오를 삭일 때마다, 결사단을 이끌 자격을 스스로 저울에 올릴 때마다 아카나가 그의 그림자에 드리워 속삭인다.중립은 공명정대함인가, 유약한 회피인가?

측면, 시야의 사각, 그림자가 가장 길게 늘어지는 황혼의 시간. 그 어스름 속에서 아카나는 정면으로 서는 법이 없었다. 늘 곁에, 가장자리에, 헤아릴 수 없는 위치에서 그가 가장 사랑했던 이들의 목소리를 빌려 스며든다. 사냥이란 본디 균형을 잡으려는 자에게 그 균형이 디딘 자리마저 의심 위에 세워졌음을 일깨우는 일이므로.

지금도 아카나는 누군가의 그늘에 깃들어 있다. 명령과 의식과 떠나는 일 앞에서 누군가는 반드시 멈춰 선다. 그 한 박자의 망설임이 있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 가장 깊이 헤아리는 자, 가장 오래 저울질하는 자야말로 가장 풍성한 식사이기에.